
토양책은 아니지만 나름 한국 농사책 고전(?)이라고 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1995년 3월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시기적으로 큰 차이는 없으나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후 한국에 들어온 듯하다. 책의 구성이나 삽화가 꽤 일본 책스럽다 했더니, 저자가 영향을 받은 스승 세 명도 모두 일본인이다. 야마기시즘의 창시자 야마기시 미오죠, 효소의 창시자 시바다 겐지, 그리고 거봉 포도를 만든 신재배기술 전문가 오이노 우에야스가 그들이다. 저자는 야마기시 미오죠를 제외한 나머지 두 분의 사후, 남겨진 저서와 가족들을 찾아 그 내용을 흡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현대 한국 농업사에서 조한규라는 인물은 꽤 입지전적인 존재지만, 80년대생인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그 존재가 많이 잊힌 듯하다. 1960년대 산안마을의 전신인 화남협업농장의 멤버였고 한국형 '자연농업(KNF)'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그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이를테면 주먹밥을 산에 두어 곰팡이를 분양받아 온다든지, 바닷물을 퍼오거나 풀을 설탕에 절여 만든 효소를 밭에 뿌려주는 식이다. 산속 미생물을 채집하는 방식은 바이오다이나믹만큼이나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돈 없이 성실함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니 이런 농사법이야말로 탈성장과 궤를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다.

나름 2014년부터 농사를 지으며 느낀 건데, 농사는 생각보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비싼 활동이다. 다들 수지타산 따지면 사 먹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씨앗값부터 만만치 않고 모종은 더 비싸다. 특히 텃밭은 좁은 면적에서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니 시장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품종을 찾아 심게 되는데, 토종 씨앗을 직접 받아 심지 않는 한 생산비가 정말 높다.
그리고 농사를 짓다 보면 깨닫게 된다. 돈 주고 사는 것들은 반드시 쓰레기를 남긴다는 사실을. 씨앗 봉투, 빈 포트, 원예용 상토와 유기농 퇴비 봉투까지... 땅에 들어간 내용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플라스틱 쓰레기다. 조그마한 텃밭조차 유지비가 이토록 드는데,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자연과 동반자로 살아가는 자급자족 농사를 지향한다면 조한규 선생의 문제의식이나 방식에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물론 우리 팀 '지하연합'은 옛 지혜에 기대는 방식만큼이나 현대 과학에도 관심이 많다. 다만 그사이에서 무엇을 얻고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아직 그려나가는 중이다. 돈이나 환경 부담이 큰 설비를 쓰지 않으면서 어떻게 땅을 기반으로 탐구할 수 있을지 궁금해 모인 팀이기도 하다. "해보니 좋더라" 수준을 넘어 근거가 뒷받침되는 과학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토양 성분이나 미생물 연구를 위해 땅을 파헤치는 행위에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이다. 거부감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상태랄까.
조한규식 농사법은 주변에서 여전히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세븐시즌스가든의 김재용 대표는 조한규 장로님께 조언을 얻어 정원에 바닷물을 주고 있다는 후일담을 전해주었고, 양평의 친구들과 균근균 역시 주먹밥으로 미생물을 배양하는 실험을 했다. 10년 전에는 과일 꽃이 떨어지면 그걸 주워 효소를 담가 밭에 주었다는 농민의 과일을 사 먹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대개 후기는 "좋다" 혹은 "잘 안되더라" 정도의 막연한 감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어떤 부분에서는 꽤 상세한 설명을 내놓는다. 가령 혐기균도 토양에 이로운데, 호기균이 침투할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식이다. 호기균이 만든 가스가 단단한 토양에 미세한 균열을 내면 그 틈으로 호기균이 들어간다는 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설명은 대부분 만화로 그려서 휙휙 넘어가지만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한규식 자연농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진 건 바이오다이나믹과 비슷한 지점이다. 자연을 관찰해 나름의 이론을 정립했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느껴졌는데, 동식물의 존재(?) 기질(?) 캐릭터(?) 같은 것이 에너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 그렇다. 슈타이너는 동식물의 어떤 생김새가 어떤 에너지가 발현한 결과이니 그걸 활용해서 증폭제로 쓸 것을 권하고, 조한규는 쑥, 미나리, 클로버처럼 가장 일찍 돋아나는 풀은 열이 높고 성장호르몬이 활발하기에, 이를 채집해 흑설탕에 절여 효소로 만들면 훌륭한 활성화 자재가 된다고 본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과학적으로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교차하는 지점이다.
어차피 농사라는 게 스승이 있고 매뉴얼이 있어도 그대로 구현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퍼머컬처를 두고 'n개의 퍼머컬처'라고 말하기도 하나 보다. 나는 그저 따라 하기 쉽고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내 방식으로 정리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쉽고 근거 있는 이야기들을 땅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조한규 선생의 책을 봐도 그런 나라 걱정, 공동체 걱정, 토양 걱정이 초반부터 나온다. 한때의 농업 엘리트가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분은 그 이후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등의 개방농정 이후) 농촌의 공동체가 붕괴되고 각자도생으로 변해가는 농촌과 농업의 현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쉽게도 조한규 선생은 작년 초 타계하며 뵐 기회가 영영 사라졌다. 궁금증이 들 때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한번쯤 만나 뵐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아직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지만 그가 만든 한국식 자연농법은 나에겐 영원히 클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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