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양책 DIGGING

흙이란 무엇인가

by 균근균 2026. 3. 8.

“Is this soil?”

 

빈 유리병을 든 교수님이 묻는다. 모 대학 농대의 전공필수 수업인 토양학 강의 첫날. 50여명이 가득 찬 강의실에는 침묵이 가득하다. 교수님이 유리병 안에 물을 절반쯤 붓고는 다시 묻는다. 이것은 토양인가요? 학생들은 침묵으로 부정을 대신한다. 교수님은 이제 빈 유리병에 낙엽을 몇개 넣은 후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나는 긴가민가하며 토양일수도? 생각한다. 나중에 썩으면 흙으로 돌아갈테니. 

 

드디어 교수님이 곱게 체를 친 흙을 유리병을 넣고 이건 토양이냐고 묻는다. 이제서야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한다. 교수님은 그 흙 위에 물을 넣고, 낙엽까지 얹은 다음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이건 토양인가요?

 

토양학 첫 시간, ‘토양‘이 무엇인지 정의하고자 한 편의 일인극이 펼쳐지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질적인 느낌에 사로잡힌다. 

 

 

토양은 45%의 무기물(모래, 점토 등의 고체)와 25%의 물, 25%의 공기, 5%의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다. 원형 그래프로 깔끔하게 설명되는 토양의 정의다. 토양은 말 그대로 여러 고체 액체 기체의 ‘혼합물‘이다. 

 

교수님은 토양의 각각의 구성요소를 하나씩 지목하며 이것이 토양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를 모두 합친 결과물을 보며 토양인 것 같다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소되지 않은 질문이 남아 있다. 전체를 부분의 합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부분을 이해한다고 하여 전체에 대해서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수업과 책을 통해 토양의 구성성분 하나하나를 다 이해하면 흙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이 떠오르는 건 내가 흙을 처음 접한 곳이 교과서나 강의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흙에 대해 학문적으로 아는 건 전무하지만, 흙을 만졌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앎’이 나에게는 있다. 예컨대 공사현장에서 퍼온 흙으로 객토를 해와서 척박한 밭에서 처음 농사지었을 때, 미니사이즈로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흠, 여기 흙은 정말 영양분이 없군’ 생각했다거나. 식물 잔사가 계속 쌓인 밭의 가장 윗층은 좀 검다거나. 어떤 땅은 당근이 잘 뽑히지 않는 진 땅이지만, 어떤 땅은 당근이 뾱! 뽑히는 포슬포슬한 땅이라거나. 황토땅은 가물거나 갈지 않으면 정말 돌같이 굳어버린다거나. 대부분 직접 삽질이나 호미질을 하면서, 땅을 만지면서 느끼고 관찰한 ‘직관’이 대부분이다. 

 

토양학 공부를 따로 해본 적은 없지만 좋은 흙은 어떤지 대충은 알고 있다. 포근포근, 푸슬푸슬해서 호미가 잘 들어가고, 손에 쥐었을 때 손가락 사이로 가루처럼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서로 잘 뭉쳐지고, 물을 주면 표면으로 물이 흐르는게 아니라 그 속까지 잘 스며들고, 색깔은 좀 거무스름하고. 이런 지식은 땅에 뭔가를 심고 키우며 흙과 상호과정하는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단순히 흙을 퍼서 관찰만 했다면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에 토양검사를 맡기면 pH, 유기물, 인산, 칼륨, 칼슘, 마그네슘 등 흙에 대한 화학적 정보들을 준다. 그리고는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기 위한 비료 시비 처방서를 내어준다. 토양학 교과서에는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성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수치와 교과서는 깔끔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것을 안다고 해서 흙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의문스럽다. 

 

밭에 피어난 정체 모를 버섯 / 널 위해 준비했어! 멧돼지가 남긴 하트

 

 

나에게 남아있는 흙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어렸을 적 살았던 시골 동네에 이곳저곳 쌓여있던 농작물이 썩으며 나던 퇴비 냄새. 비오는 날 밭에 가면 좀 더 풍부하게 느껴지는 흙 냄새. 풀이 무성한 밭을 매다가 마주친 흙 사이 구멍구멍으로 작은 곤충들이 일제히 도망치는 모습. 무성한 컴프리 잎 아래에서 처음 본 동글동글한 지렁이 똥. 호미질을 하다가 흙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참개구리에 밭이 떠나가라 내질렀던 비명. 지렁이를 먹기 위해 텃밭에 찾아온 멧돼지가 벌여놓은 난장판에 헛웃음 짓던 날들. 어느날 흙 위로 뾱 솟아난 버섯. 어떤 대안학교의 생태화장실 문에 붙어 있던 ‘똥이 곧 밥이고 밥이 곧 똥이다’는 말. 이러한 경험은 생동감이 있어, 나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살아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에 나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 이렇게 보면 흙은 여러 요소들을 그저 모아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적인 실체다. 

 

날 것의 경험이 주는 풍부함이 있다. 그 풍부함이 결여된 지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 중에는 자연 속에 있는 흙을 한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흙을 처음으로 접한 곳이 밭도 아니고 산도 아니고 교과서와 실험실이라면, 그들에게 흙은 무엇일까. 시험을 위해 처음으로 흙을 공부한다면 그건 좀 비극적이지 않나. 

 

전체로서 경험되었을 때 이해될 수 있는 세계가 있고, 부분으로 쪼개어 분석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질감도 있다. 농민은 흙을 전자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과학자는 후자의 방식으로 흙을 바라본다. 이 두 가지의 렌즈가 모두 갖고 싶은 나는, 긴가민가 하는 자아분열감에 시달린다. <향모를 땋으며>를 쓴, 북아메리카 원주민이자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윌 키머러도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러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해본다. 

 

돌침대가 아니라 흙침대에 누워 볏짚이불을 덮고 흙으로 돌아가기를 시도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