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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밭 DIGGING

유기농, 적정 규모의 유기적 연결

by 균근균 2026. 3. 6.

2026.1.20-24 

일본 이바라키 현, 이시오카 시, 야사토 농장

 

야사토 농장을 알게 된 것은 재일교포 3세이자 일본 재연결작업 네트워크의 일원인 예진 상을 통해서였다. 한국 사람 여섯명이 일본에 가서 유카 선생님이 진행하는 재연결작업을 받기로 했는데, 도쿄는 방값이 너무 비싸니 흔쾌히 자신이 일하던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며 제안해주었다. 

 

일본에 언젠가 우프를 가리라! 마음 먹고 있던 나는 예진 상에게 워크숍이 끝나고 농장에 머물며 농장일을 해볼 수 있겠냐고 물었고, 예진상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리하여 총 4일을 농장에서 머물게 되었다. 

 

예진상이 보내준 농장 사이트를 일본에 가기 전 읽어보는데,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가장 눈에 띄는 말은 ‘생활의 실험실’이라는 말. 각종 농사 행사 일정과 도시인들이 농작업을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 야채 꾸러미 신청하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https://yasatofarm.exblog.jp/ 

 

도쿄를 거쳐 이시오카 역에서 내린 우리를 마중나온 예진 상은 가장 먼저 우리를 밭으로 데리고 갔다. 당근을 하나씩 뽑아 보라고 했다. 1월 한겨울에도 노지 밭에 당근이 자라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뾱!하고 부드럽게 뽑히는 당근에 또 한번 놀란다. 작년에 일하던 농장에서는 당근 뽑다가 허리 나갈 뻔 했는데.. 흙이 포근포근 푸슬푸슬한 게 느껴졌다. 함께 당근을 뽑던 한국 친구들도 모두 ‘흙이 너무 좋아!’ 감탄한다. 야사토 농장이 이 땅에서 농사지은지는 50년. 50년동안 동물들이 싼 똥을 퇴비로 묵혀 밭과 논에 넣고, 밭과 논에서 나온 부산물을 다시 동물의 먹이로 주는 것을 반복했다고 한다. 밭을 갈긴 하지만 지속적인 양질의 유기물 투입이 이루어지니 흙이 좋을 수 밖에. 한국에서 경축순환은 말로만 들어봤는데 이렇게 논, 밭, 축사가 적당한 규모로 있는 농장은 처음 본 것 같다. 

 

당근과 코부부

 

스태프들이 함께 쓰는 공용공간인 부엌에 들어서는 기니피그? 같이 생긴 동물이 신발 앞코에 코를 비빈다. 태어난지 3주된 새끼 돼지. 이름은 ‘코부부’. 함께 태어난 열댓명의 형제와 달리 너무 작아서 실내에서 사람이 키우고 있다고.(너무 귀여워서 심쿵…)

 

야사토 농장은 굉장히 신기한 운영구조를 가지고 있다. 땅주인은 따로 있고(80대 할아버지) 일곱여덟명의 스태프가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농장 소유주는 따로 없다. 스태프는 가장 오래 일한 분이 18년, 짧게 일한 사람이 7년 정도로 다양하다. 연수생 기간을 1년을 거쳐서 농장에 합류하기도 하고 일하다가 다른 도시로 나가기도 한다. 대부분 가족을 이루고 있는데, 농장 주변 건물에 살거나 마을 안에 따로 집이 있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과 논, 밭, 축사에서 함께 한다. 공동체 같기도 하고, 직장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경계선 상에 있다. 

 

너무 신기해서 농장 스태프 중 한 분인 가오리 상에게 ‘대체 어떻게 이렇게 같이 살 수 있죠?’하고 물으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자기도 여기서 처음 일했을 때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저녁만 되면 방에 숨어 들어가 있었다고. 1년 동안 연수를 받고 나고야에서 잠시 살다가 돌아왔는데, 지금은 이 곳에서의 공동생활이 좀 더 좋아졌다고 한다. 아이들도 함께 키울 수 있고,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고. 내가 봐왔거나 생각한 공동체는 빡센 규율이 있고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곳이었는데, 이렇게 따로 또 같이 느슨하게 함께 할 수도 있구나, 그냥 좋아서 함께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강한 신념이 있어야만 공동체를 이루는 건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공용공간인 부엌. 밥도 먹고 회의도 하고 일도 한다

 

우프 첫날. 아침 8시부터 축사일을 시작했다. 야사토 농장은 400마리의 닭과 60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대규모 축사는 아니지만, 농장 회원들에게 고기와 계란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돼지들이 배고픈지 사람이 지나가자 엄청나게 꽥꽥거린다. 밭에서 사료용으로 키우는 무청과 곡물사료(이바라키 현 내에서 품질이 낮아 팔리지 않는 밀과 쌀을 구입해 쓴다. 이 또한 지역 순환을 목표로!)를 준다. 닭에게 주는 사료는 직접 자가제조 하는데, 지역 학교 급식에서 남은 밥과 미강을 섞어 발효한 것에 어분, 폐화석 등 미네랄이 풍한 재료들을 섞어서 만든다. 사료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궁금했는데, 나의 짧은 일본어 실력과 축사 담당 이바라키 상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인해 정확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축사 한켠에는 돈분과 계분이 짚, 왕겨 같은 각종 유기물과 섞여 두엄더미가 켜켜이 쌓여있다.

 

쌀과 미강을 섞어 발효한 것 / 두엄 더미

 

하타케(밭) 담당은 야쨩. 10여년 전 농사를 짓고 싶어서 일본 전역에 우프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야사토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농사학교도 많은 것 같던데 우프를 하셨네요? 라고 묻자 이전에 우프 했던 곳의 할아버지가 농사를 잘 알려줘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하우스에서 잡초뽑기, 시금치, 당근, 무우 수확, 온상에 넣을 낙엽 모으기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밭일을 하다보니 ‘여긴 한국인가 일본인가’ 생각에 잠시 위치 감각을 잃었다. 한국과 일본의 농업은 정말 닮아 있다. 뭐 농사일이야 어딜가도 비슷할 것 같지만. 하지만 농업 시스템은 서로 많이 다른 것 같아서 그런 차이를 우프를 다니며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프 둘째날에는 농장 회원들에게 보낼 꾸러미 포장을 했다. 야사토 농장 회원은 80명 남짓. 이 날은 60개 정도의 박스를 쌌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 답게 박스 사이즈도 S/M/L/XL/XXL로 세분화되어 있고, 박스 안에 들어가는 채소목록도 받는 사람별로 커스터마이징되어 있다. 채소도 받는 사람이 거의 손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듬고 깨끗하게 닦아 보낸다. 야채에 흙이 거의 묻어 있지 않고, 양도 한가지 채소가 너무 많지 않으니 먹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에 수확한 계란과 채소를 차곡 차곡 넣고 마지막에는 농장 소식이 담긴 소식지와 홍보 전단을 넣는다. 가오리 상이 부탁해서 나의 우프 후기도 소식지에 실렸다! 꾸러미를 쌀 때는 가까이 사는 이웃분들이 와서 돕기도 하고, 박스를 직접 찾으러 오는 회원들도 있다. 

꾸러미 싸는 날~

 

우프 첫날 콩을 고르면서 가오리 상과 유기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는 유기농 라벨이 붙은 농산물이 많은데, 막상 유기농을 하는 농장에 가서 일하면 대거로 구입한 유박 비료를 쏟아붓고, 모든 작물에 비닐 멀칭을 하고, 살충제와 각종 영양제를 준다고. 유기농과 관행 농업이 과연 차이가 있나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가오리 상이 상당히 흥미로워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본의 유기농은 다른 것 같다고. 야사토 농장은 필요에 따라 하우스도 있고, 비닐멀칭도 쓴다. 하지만 축사와 논밭도, 생산자와 소비자도 적정한 규모에서 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유기농’은 단일한 원칙이나 화학물질 분석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농장의 구성요소들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최대화하는 지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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