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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밭 DIGGING

자연에게 친절한 농사

by soricidae 2026. 3. 3.

자연농은 소위 ‘하지 않는’ 농사로 설명된다. 그 ‘하지 않는 것’에는 농약과 비료는 물론이고, 땅을 갈지 않고 퇴비를 주지 않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렇게 사람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뺄셈의 농사’를 자연농으로 바라본다. 2018년 2월, 일본 효고현 고베의 ‘아침이슬농장’에서 만난 농민 나카노 신고 씨는 자연농을 실천하는 자신의 농사를 ‘자연에게 친절한 삶’이라 설명했다. 농법이란 건 단순히 농사짓는 방법뿐 아니라, 그 땅을 딛고 사는 사람의 일상까지 포함하는 것이니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만났던 고베의 자연농 현장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침이슬농장은 내가 처음으로 본 자연농 농가였는데, 난개발되지 않은 농촌 마을로 진입하자 차분하고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졌다. 햇살은 온화했지만 바람은 어찌나 강렬했는지, 온 산의 대나무를 흔드는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멀찌감치서부터 나를 감싸던 그 소리를 들으며 그의 밭을 거닐고, 작은 하우스 안 낙엽 더미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산 아래 모종을 기르기 위해 남겨둔 작은 하우스 하나 빼고는 비닐 한 장 없는 밭. 그 밭에 언젠가 다시 가고 싶어 그 이후로도 인연을 놓지 않으려 꽤 오랫동안 안부를 물으며 질척댔다. 덕분에 2024년 11월 말, 그의 밭에서 신고 상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1월 중순의 한국은 이미 가짓과 작물의 마지막 수확이 끝난 시점이었지만, 고베의 밭은 수확을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는 계절이었다.

오크라와 고추, 딜이 줄맞춰 자라는 아침이슬농장
양파 싹을 파종하는 (예비) 농민들

이날은 나 말고도 10명 남짓한 손님이 더 있었다. 알고 보니 매주 찾아오는 귀농 희망자들이었다. 고베시에서는 귀농 희망자 중 자연농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아침이슬농장에 연결해 학습을 지원한다고 했다. 나 역시 2023년에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 교육을 이수한 적이 있다. 하지만 100시간 중 절반 이상을 스마트팜 예찬(농사 안 지어본 사람들이 말하는 ‘로봇이 대신 지어주는 농사’... 되겠냐고)만 듣느라 곤욕을 치렀던 터라, 지향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일본의 귀농 지원 체계가 부러웠다.

 

이날은 채종과 양파 파종 워크숍이 열렸다. 오크라와 고추, 바질 씨앗을 함께 채종하고, 양파를 심을 자리에는 생쓰레기를 잘 섞어준 뒤 호미로 얕게 판 곳에 모종을 줄 맞춰 심었다.

 

 

11월 말의 고베는 쌀을 수확해 널어두는 시기였다. 혼자서 자연농으로 쌀농사를 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여러 사람이 함께 농사짓는단다. 그렇게 수확한 쌀 일부는 지역 양조장으로 가 매년 사케로 탄생한다. 그 사케 라벨에는 나카노 신고 상을 비롯해 쌀농사에 참여한 농민 10명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사케에는 쌀 농사를 지은 농민들의 이름이 들어간다. 맨 첫줄의 나카노 신고상의 이름을 비롯해 10명의 농민 이름이 라벨에 기록됐다. 이 사케는 신고상과 함께 농사짓는 이자카야 마스터인 카츠유키 상의 가게에서 마셔볼 수 있었다. 이자카야 마스터가 직접 자연농으로 농사지은 채소로 안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사케 좀 마셔봤다고 자부하지만, 사용한 벼의 사진과 함께 농민의 이름이 적은 라벨은 처음이었다. 농사와 농민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브랜딩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농사를 지지하고 다듬어주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토양을 보호하는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자연농은 흔히 ‘고독한 농사’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잠깐 엿본 고베의 자연농은 고독할 틈이 없어 보였다. 우리 근처에서도 이런 ‘자연농 길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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